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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ia Conditorium
[책리뷰]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라 부른다 본문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 영문 원 제목을 그대로 직역하면 '범용 컴퓨터'가 된다. 단순히 책 제목이 '범용 컴퓨터'였다면 현대 컴퓨터가 어떻게 동작하는지에 관한 책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책 제목처럼 우리가 컴퓨터라 부르는 것들이 초기 어떤 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서술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서/연대기 같은 책은 아니다. 수학적 개념과 철학 사고방식이 어느정도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아래 예제를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본다.
우리는 원소의 숫자를 세지 않고도 두 개의 집합이 같은 원소의 개수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방법은 한 집합의 원소와 다른 집합의 원소를 1 대 1로 매치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장의 관중석이 꽉 차 있고 입석 관객은 하나도 없다면 경기장의 관객 수는 (세지 않고도) 의자의 수와 일치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각각의 의자와 의자를 차지한 관객을 1 대 1로 매칭시켰기 때문이다. ... 두 개의 무한 집합의 원소들을 1 대 1로 매치시킬 수 있다면 두 개의 집합은 원소의 개수가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이 개념을 두 개의 집합, 모든 자연수 1, 2, 3, … 과 모든 짝수의 집합 2, 4, 6, … 에 적용했다. 이 두 개의 집합의 원소들을 1 대 1로 매칭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자연수 '개수'와 짝수 '개수'가 동일하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다.
- p.85 서로 다른 크기의 무한 집합들 中
위 내용에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연수는 홀수를 포함하고 있으니 짝수 집합보다 무조건 개수가 더 많지 않냐' 라고 헷갈린다면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매칭시키는 논리부터 시작해서 프로게의 논리 규칙, 칸토어의 연속체 가설, 대각선 논법, 힐베르트 결정 논리, 튜링 기계의 동작 원리 등등 수학을 공부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책에서 나오는 논리, 철학, 설명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전체 큰 맥락까지 이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오늘날 범용 컴퓨터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고, 오래 전 학자들의 생각이 확장되어 가면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으려면 뒤쪽 '더 읽을거리'를 계속 참고해야 한다. 참고 자료랑은 별개로 추가 설명이 약 40페이지 가량 있는데,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물론 단순하게 한 줄로 출처만 적어놓은 부분도 많다. 수학자들에 관한 영화도 많기 떄문에 대표적으로 '이미테이션 게임' 영화도 같이 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추가로 책 맺음말에서 감명깊게 읽은 구절이 있다. 먼저 이 책은 생각의 힘을 강조하는 한편, 미래 예측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다음 구절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의 연구와 생활을 지원해 주는 사람들 역시 빠른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그들을 조종하고 싶어 한다. 단기적으로 이런 노력은 헛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즉각적인 성과가 분명하지 않은 연구를 좌절시켜 더 나은 미래를 막게 될 것이다.'
즉, 과학 연구를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예산을 삭감해 버리는 짓은 매우 어리석다는 것이다. 어딘가의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다. 지금 당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이론일지라도 훗날에는 거대한 발견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해주었으면 한다.
"인사이트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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