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tia Conditorium

프로그래머 실력에 대한 자격지심 조언(w 정종필 대마왕님) 본문

일상/에세이

프로그래머 실력에 대한 자격지심 조언(w 정종필 대마왕님)

크썸 2022. 6. 12. 16:10

원본 링크 : 현재 중소 게임회사 다니며 틈틈히 인디게임 개발하는 개발자입니다. 게임이 만들고 싶어 기획부터 | Peing -질문함-


프로그래머 실력에 대한 자격지심 조언

질문 : 

현재 중소 게임회사 다니며 틈틈히 인디게임 개발하는 개발자입니다.

게임이 만들고 싶어 기호기부터 플머까지 다양한 커리어가 섞이다보니 미묘한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오래, 높게 쌓은건 프로그래머쪽 커리어입니다만,

요즘들어 부쩍 무엇 하나 제대로 일인분을 해내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 내가 캐릭터를 잘못 키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곧 서른이 머지 않았는데 지향점이 높은 탓인지 제가 부족한게 무엇인지 나열해보면 마음이 꺾이고

키보드에 얹은 손이 자꾸 굳는 기분을 느낍니다.

이대로 가면 평생 실패만 하며 살 것 같아 막막해서 최근 몇달동안 부쩍 자신을 학대하다시피 기획서를 퇴고하고,

코드를 다듬고, 게임 구조를 연구하다가 몸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엄습하는 조바심과 새어 나오는 자격지심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제 부족함 때문에 피해를 볼 팀원들에게 어떻게 더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개발자로서 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은걸까요?


답변:

말씀하시는 그런 증상이 그래픽에서도 자주 보이고 증상이 명확한 일이라 이걸로 비유해 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픽 하는 사람들중에도 자신의 그림이 엄청나게 못나보이고,

부족한것이 잔뜩 보여서 자존감이 꺾이는 그런 단계가 있습니다. 그럴때 상담을 꽤 해주곤 했는데요,

 

그런 경우는 '대다수는' 어떤 경우였다면 자신의 손보다 '눈' 이 더 발전해서,

즉 눈이 한 단계 높아져 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부족함이 너무 눈에 잘 띄어 버리는 경우였습니다.

보통 실력은 리니어하게 (프로그래머시니까 알아듣겠죠) 발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실력은 계단식으로 발전하죠.

그리고 눈이 높아지는 것도 계단식으로 발전하는데,

문제가 되는것은 그 두 계단의 타이밍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난 쩔어 -> 아 이건 좀? -> 으앙 난 쓰레기야 -> 어 나 좀 하네 -> 의 과정이 순환되어 반복되는 것이지요.

 

그런 경우 좋은 해결책중 하나는 '그동안 해왔던 결과물들을 나열해 보고 얼마나 발전해 왔는지를 느껴보라' 라고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울면서 수라장을 헤치고 왔는데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길을 왔거든요.

그리고 만약 속도가 느리다면 이번엔 길지는 않아도 좌충우돌 하면서

남보다 넓은 길을 만들면서 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내가 해온 것들을 반드시 정리해 놓아라' 라고 가르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우울증은 사실 실력이 계단식으로 발전하기 직전의 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 객관적으로 자신이 해온 일을 뒤돌아 보시면, 내가 발전없이 그저 제자리에서 발버둥만 친 것인지 ,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발전했구나.. 인 것인지를 좀 더 제대로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조바심과 자격지심은, 이렇게 달래는 것 외에는 사실 큰 방법이 없습니다.

발전을 위한 열병을 어찌 막겠습니까? 오히려 그 열병에 져서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더 무섭지요.

 

그러니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일단 뒤돌아 보시고, 자신이 정말로 시간낭비를 했는지 아니면

느리더라도 발전해 왔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자격지심이 자신의 문제가 아닌 '남들과의 비교로' 생겨난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같은 경우는 그걸 하도 겪다보니 이젠 그런 열병에 익숙해져서 ' 대충 살아가는 게임개발자' 라는 블로그 네임까지 만들고 , 까짓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라지... -.,- 라는 심정으로 여태까지 한 30년째 게임 만들면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길에 대해서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한 분야의 전문가는 전문가로의 인생이 있고, 다방면의 제네럴리스트는 제네럴리스트의 길이 있습니다.

아니 ... 사기치고 다니는 사기꾼들도 다양한 길이 있는데 우리 인생에 그런 길이 없다는게 말이 됩니까...?

당장 기획 + 프로그래밍 기술인 테크니컬 디자이너 직군도 생기고 있고,

나중에 1인 개발자 되기에도 굉장히 좋은 스텟 아닙니까? 꼭 남들 스텟 찍는 그대로 따라 찍을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중간중간 검증하고 고민해 보시면서 자신의 벡터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고민해 보세요. 그리고 필요에 따라 수정해 가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잡캐 트리로 살아온 사람으로써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실패라고 하셨는데,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우선 그 기준부터 세워보시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실패라고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주변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혼자 모든걸 짊어지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같이 도움 받고 도와줄 수 있다는 동료가 있다는 점에서 남들보다 더 좋은 환경이 아니겠습니까? 화이팅입니다.

 


대마왕님 답변에 대한 주인장 생각

좋은 해결책중 하나는 '그동안 해왔던 결과물들을 나열해 보고 얼마나 발전해 왔는지를 느껴보라' 라고 해 주는 것

역시 사람은 너무 앞으로만 달리기 보다는, 문득문득 뒤로 돌아보아야 한다. 나 역시 회사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떄, 도저히 모르는 분야여서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고 좌절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블로그 예전 글을 보게 되었다. 과거에는 화려한 코드라도 올려두었던 자료들이 지금보니 너무 허접해보인다. 포트폴리오 자료라고 올려두었던 것들도 당시에는 가장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과거나 지금이나 실력면으로는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아니였다. 프로그래밍 기본 지식을 익히고 문제해결을 위한 과정을 깨닫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기초적인 그래픽 프로그래밍부터 이제는 소켓 프로그래밍도 어떤건지 알고 있다. 블로그에 종종 올려놓지 않았다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꺠닫지 못했을 것이다.

 

꼭 남들 스텟 찍는 그대로 따라 찍을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고요.

프로그래머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것도 공부해야하고 저것도 알아야하고, 이러저러한 것도 할줄 알아야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취준생일 떄는 와 저걸 언제다하지...할수있을까 라고 고민했지만, 지금은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에 재능있는 사람들은 단숨에 해치우고 이것저것 다 하겠지만 난 아니다. 평범한 내가 해야할 일은 조바심 내지말고 천재들이 해야된다고 말하는 일들을 묵묵히 천천히 꾸.준.히 해나가는 것.

앞서 나갈 필요는 없다.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계속 해나가는게 중요하다. 혼자서 그 모든 프로그래밍을 다 할 수는 없다. 프로그램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서 사람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BTS의 멤버 슈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렸을 때 영웅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 방탄소년단이 됐다". 남들따라서 이것저것 스텟을 찍을 필요는 없다. 왜 너는 다르게 하냐, 근본이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이 없다는 말은 내가 오리지널이라는 뜻이다.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우선 그 기준부터 세워보시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있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프로그래밍을 하고있냐 아니냐 이다. IT 업계로 전공을 바꾼 이유도 나이를 먹고 나서도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70, 80대에 하는 프로그래밍과 현재 하고 있는 프로그래밍은 전혀 차원이 다르겠지만, 혼자서도 제품을 만들고 일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이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